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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1제 : 삼육대학교를 설립해주신 하나님께

 

 

1905년 11월 17일에 한국 땅에 최초의 재림교회 선교사로 발을 디딘 스미스(W. R. Smith) 목사는 한국 땅을 유능한 젊은 일꾼들을 양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하였다. 그는 일본 미슌에 계획하고 있던 일본 삼육대학을 이용하여 한국 재림교회 복음사역자를 양성하라는 권고를 뿌리치고 1907년에 두 번째 재림교회 선교사로 내한한 여선교사 샤펜벅과 더불어 아직 선교역사가 2년도 채 되지 않는 200미만의 한국 재림교회가 독자적으로 복음교역자 양성학교를 설립하려는 결심을 굳혔다. 그는 순안 지역의 교회 유지 김두형의 교섭을 통하여 평안남도로부터 순안 석박산 기슭 포정리 일대의 땅 55000여평(45에이커) 땅과 그 땅에 세워진 두 채의 신당 건물을 무상으로 제공받았다. 스미스 목사는 이 땅 위에 한식 기와집 7간(60×12피트)을 짓고 1907년 9월 12일에 학교 설립 인가 지령을 받았다.

스미스 목사 등이 학교 교사를 건립하는데 소용된 대부분의 재정은 스미스 목사 부부와 샤펜벅 여선교사의 가족과 친지 그리고 대총회로부터 제공되었다. 이렇게 출발된 교역자 양성학교는 러셀 의사가 제2대 교장이 되면서 농장과 목장 등 실업부가 강화되었고 이로써 이 학교가 신앙교육과 함께 후에 노작교육의 모범학교로서 고학생의 낙원이라는 별명을 듣게 되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하나님께서 대총회로 하여금 한국 땅에서 들려오는 마게도니아의 호소에 신속히 대응하게 함으로써 한국 땅에 재림신자가 발생한지 1년 만에 대총회 선교사 스미스 목사 부부가 파송 되었고 뒤이어 샤펜벅, 러셀(Riley Russel), 이희만(Howard M. Lee) 선교사들이 차례로 파송되었다. 그리고 이로써 한국의 복음사역의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으며 그 중에도 하나님께서 초기 선교사들과 본방인 지도자들로 하여금 교육사업의 우선적 필요를 확신토록 하여 모든 여건이 미비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선교 3년 만에 교역자 양성학교를 출발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로써 삼육대학의 오늘이 있게 되었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