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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2제 : 일제 식민통치하의 어려움 속에서도 출판사업을 번성케 하심에 감사드린다

 

 

910년 일본에 국권을 강탈당한 이후 1945년 광복할 때까지 36년 동안, 한국 재림교회 출판사업은 갖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번성하였다.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던 바로 그 해에 정기간행물 출판을 시작하였으며, 1912년 회기동의 현 위치로 이전하여 출판소를 착공 그해 말 준공하고 입주하면서 출판사명을 “세텬?의 긔별?”로 바꾸었다가 1916년 “시조월보사”로 개명하였다.1914년 <묵시록 해석>외 두 권의 단행본을, 1915년 매조 기도력을 연간으로 출판하였으며 1916년 교회기관지 <교회지남> 제1권 1호를 월간으로 창간하였다. 다음해에는 209장으로 구성된 최초의 곡조 찬미가를 펴냈다.  1918년에는 사옥을 2층으로 증축하였고, 1919년에는 최초의 한글판 예언의 신 <고대화>(현, 부조와 선지자)를 번역 출판하였다. 1920년에는 미국에서 대형인쇄기(Michle Press)를 구입하였는데, 이 인쇄기는 한국 최초의 고속 인쇄기로 시간당 2,250매 인쇄가 가능하였다.

 

1923년 <시조월보>를 <시조>로 개제하고 출판사명도 “시조사”(時兆社)로 개칭하였다. 이듬해엔 한국출판계를 대표할 만한 건강위생서적 <연년익수>를 출판하였고, 1929년에는 대한성서공회와 예수교서회의 의뢰로 성경과 찬송가를 인쇄하기도 했다. 1930년 1월 새벽 미명에 원인불명의 화재로 사옥이 전소되는 사건이 있었고, 그해 재건축과 더불어 최신식 인쇄설비를 다시 갖추게 되었다. 조선 총독부에서는 공식문서 출판인쇄를 의탁하기도 했다. 1936년의 시조는 4만부에 육박하는 발행부수(39,000부)를 기록했다. 일본이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그 험난한 시절에도 시조사는 상당기간 수많은 신앙서적과 성경연구도서 및 건강서적 등을 왕성하게 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광분한 일제의 공권력에 의해 <시조>와 <교회지남>은 1941년 강제로 폐간 당하게 된다. 그러나 <건강생활>로 이름을 바꾸어 출판하였다.

 

시조사가 발행하는 주요 서적들(<각 시대의 대쟁투>, <다니엘서 연구>, <묵시록 연구>등)도 총독부에 의해 판매 가처분을 받게되고 교회해산령이 발표되기 직전에는 10만원 상당의 재고서적 일곱 마차분이 소각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1944년 시조사 명의로 발행하던 <건강생활>마저도 6월호를 끝으로 끝내 폐간 되었다. 하지만 광복과 더불어 <교회지남>, <안식일학교 교과>, <매조 기도력>, <시조>등이 속속 속간되었다. 일제 강점기 36년 중에도 진리를 담아내는 출판활동을 가능케 하여 암흑기에 처한 민족들에게 빛과 생명의 기별을 전하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