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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 7. 안식일의 변경

 

성서에는 주일 중 제칠일을 안식일로 지키라는 명령이 있다. 출애굽기 20:8-11을 읽으라. 하나님의 안식일 계명은 지극히 명백한데도 성경을 믿는 수 많은 사람들이 계명에서 하나님이 언급하신 날과는 전혀 다른 날을 지키고 있는 것은 웬 일인가? 이것은 참으로 알쏭달쏭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안식일을 변경하셨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그 사건으로 새 안식일이 설립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변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는지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우리는 안식일에 관한 이런 문제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바를 알 수 있다. 시 119:18을 읽으라.

(1) 하나님께 대한 경배의 의무는 어떤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가?
이방의 다른 신들 위에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경배하라는 주장을 할 때마다 하나님은 그의 창조적인 능력을 때때로 언급한다. 시편 96:5; 이사야 40:25, 26; 45:18; 시편 100:3; 95:6을 읽으라. 하늘의 존재들은 그들이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이유에 관해 요한계시록 4:11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 창조의 기념으로서 안식일은 왜 하나님이 경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인지를 언제나 말해 준다.- 그는 창조주요,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다.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이 경배 받으셔야 할 타당한 이유로 계속되는 한 안식일은 그러한 사실의 기념으로서 남게 될 것이다.

(2) 그리스도는 안식일을 변경하셨는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 18)
☞ 예수는 유대인들이 지킨 그 날을 지키셨는데, 그 날은 모든 사람이 아는대로 제칠일이다. 이것은 그의 규례였다. 누가복음 4:16을 읽으라. 그는 또한 자신의 승천 이후에도 제자들이 그 날을 계속해서 지킬 것임을 보여주셨다(마 24:20).

(3) 사도들이 제칠일에서 제일일로 변경하였는가?
성경은 그들이 언제나 유대인들이 지켰던 제칠일 안식일, 동일한 날을 지켰다고 기록한다. 사도행전 13:14, 42, 44; 17:1-3; 18:4을 읽으라.

(4)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고 주장할 한 세력이 일어날 것을 하나님은 아셨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사실을 어떻게 알리셨는가?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단 7:25).
☞ 다니엘은 이상 중에 “작은 뿔”이라고 일컬어지는 한 세력이 일어날 것을 보았다. 이 세력은 다른 세력을 뽑아 버리면서 무대에 등장할 것이었다.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다(단 7:8을 읽으라). 바로 이 동일한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웠”다(단 7:21을 읽으라).

(5) 이 세력의 특징은 무엇인가?
다니엘 7:25는 이 세력의 3대 특징, 그의 지상권 기간을 보여준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이 세력은 “말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대적하”게 될 것이다 - 참람.
☞ 문자적으로 이 세력은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함으로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된 곳에 두었다. 개인이든, 종교 조직이든 간에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시도하는 것은 참람이다. 마가복음 2:3-12에는 중풍환자가 고침받는 이야기가 있다. 서기관들은 오로지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고 믿었다. 인간이 이것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참람된 것이다. 예수는 죄를 용서하고 고치실 수 있다.
② 이 세력은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게 할 것”이었다­핍박.
③ 이 세력은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다 -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한 이 세력의 지상권을 위하여 할당된 기간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였다.
이 동일한 기간이 계시록 12:14에 언급되고 계시록 12:6은 “일천 이백 육십일”로 해석한다. 이것은 예언적 시간이므로 우리는 예언 해석의 원칙을 적용하여야 한다.--각 날은 일년을 의미한다(겔 4:6). 그러면 이 세력은 1260년간 지속될 것을 말한 셈이다. 작은 뿔 세력은 이 예언의 각 부분에 일치한다. 이것은 A.D. 538년에 3대 아리우스파 세력, 곧 헤룰리, 반달, 동고트를 멸망시킨 후에 지상권에 올랐다. 그리고 1260년간 지상권을 누렸다. 1798년 이 조직의 세력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 2년 후에 하나의 중요 세력으로 존속하게 되었으나 한 때 소유하였던 세속적 권력은 상실당하였다. 요한계시록 13:3에서 요한은 이 세력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됨을 말하였다.

(6) 이 세력은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할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특별히 안식일을 변경할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였는가?
피터 가이에르만(Rev.Peter Geiermann)은 그의 교리 문답서에서 이 세력의 주장들을 언급하고 있다.

문:안식일은 어느 날인가?
답:토요일이 안식일이다.
문:우리는 토요일 대신에 일요일을 왜 지키는가?
답:우리는 토요일 대신에 일요일을 지킨다. 왜냐하면 라오디게아 회의(A.D. 336)에서 그 신성성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옮겼기 때문이다.
죤 A. 맥휴(John A. McHugh)와 챨스 J. 칼런(Charles J. Callan)에 의하여 번역된 트렌트회의 교리 문답서는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안식일의 의식과 준수를 일요일로 옮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p.402).
성경적 안식일에 관한 문제는 날짜상의 문제를 넘어선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무엇을 요구하시든지 행하고자 하는 개인의 자발적 태도와 관련을 가진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순종을 강요하지 않으신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기라”는 지시를 받았다(대상 28:9). 솔로몬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거둘 때에 명백하고 단순하며 직접적인 호소가 있었다. “오늘 날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대상 29:5). 그리스도가 땅에 오셨을 때 그의 유일한 호소는 “나를 따르라”였다. 그는 모든 진리의 화신이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셨다(요 14:6). 예수는 안식일을 지키는 일에 우리에게 모본이 되신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눅 4:16).
문:그대는 교회가 절기들과 계명들을 제정할 권세를 갖고 있음을 입증하는 다른 방법을 알고 있는가?
답:교회가 그러한 권세를 갖지 않았더라면 현대의 모든 종교인들이 교회에 동의하는 일을 성취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제칠일 토요일 준수를 주일 중 첫째날인 일요일 준수로 대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변경들은 성경적 권위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 - Rev. Stephen Keenan, A Doctrinal Catechism, New York: Edward Dunigan and Brothers, 1851. p. 174.
문:누구에 의하여 이것(안식일)이 변경되었는가?
답:교회 지도자들과 사도들에 의해서이며, 그들도 역시 이 날을 지켰다. 성 요한은 주의 날(이것은 일요일이었다)에 성령에 감동되었다.
문:교회가 절기들과 성일을 명할 권세가 있음을 그대는 어떻게 증명하는가?
답: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경한 바로 그 행동으로써이다. 이것을 개신교들도 허용한다. 그러므로 일요일은 엄격하게 지키면서도 동일한 교회가 명한 다른 절기들 대부분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그들은 어리석게도 자기 모순에 빠져 있다.
문:그대는 그것을 어떻게 입증하는가?
답:일요일을 지킴으로 그들은 절기들을 제정하고 그들을 죄 아래에 둘 것을 명할 수 있는 교회의 권세를 인정한다. 그런데 나머지(절기들)를 지키지 않음으로 그들은 사실상 동일한 권세를 재차 부인한다 - Rev. Henry Tuberville, D.D.R.C., An Abridgment of the Christian Doctrine, New York: Edward Dunigan and Brothers, approved 1883. p. 58.


이러한 도전에 대하여 개신교는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그대는 나에게 토요일은 유대인의 안식일이었고,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은 일요일로 변경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 의하여 변경되었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명백한 계명을 변경할 수 있는 권위를 누가 가졌단 말인가? 하나님이 ‘제칠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셨는데 감히 누가 ‘아니다, 그대는 제칠일에 온갖 세속적 사업들을 행하며 일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대신에 제일일을 거룩하게 지킬지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으로서 나는 그대가 어떻게 답변할런지를 알지 못한다.
그대는 개신교도이다. 그리고 그대는 성경, 오직 성경에 의해서만 산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칠일 중에 하루를 성일로 지키는 이 중대한 문제에 있어서 성서의 명백한 글과 어긋나게 행동하며 성서가 명한 날 대신에 다른 날을 지킨다. 제칠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은 십계명 중 한 계명이다. 그대는 다른 아홉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믿는다. 누가 그대에게 넷째를 함부로 변경하도록 권위를 주었는가? 만일 그대가 그대 자신의 원칙에 일치한다면, 만일 그대가 성서, 오직 성서만을 참으로 따른다면 그대는 이 넷째 계명이 명백하게 변경되었다고 주장하는 부분을 신약성서에서 지적해낼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Library of Christian Doctrine: Why Don't You Keep Holy the Sabbath day? London: Burns and Oats. p. 3, 4.

여기에도 또 하나의 도전이 있다.
예수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눅 9:23). 누가복음 19:10은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말한다. 고대 선지자들은 “내가 왔나이다”라는 약속을 크게 울렸다(시 40:7; 슥 2:10; 히 10:7). 이제 “때가 찼을 때”(갈 4:4) 초점은 예수였다. 그의 생애의 매 주요 국면 마다 구속 사업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의 처녀 잉태를 통하여 소외된 지구 가족들은 하늘과 재결합 되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늘로 데려 가시기 위하여 땅에 오셨다. 그는 인간으로서 완전한 생애를 사심으로 우리들에게 순종과(요 15:10; 요일 2:6) 성화의(요 17:19) 모본을 주셨다. 예수는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그러한 분으로서 우리에게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공급하신다(롬 8:3, 4).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 자신이 왔음을 말씀하셨음으로 예수는 인간 뿐 아니라 죄의 결과로 상실된 것도 회복하려고 오셨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어느 날 원래 에덴의 아름다움으로 회복되기로 정해져 있음이 분명하다. 무죄한 인류가 그 회복된 상태의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경배일이 그분의 영예를 위하여 준수될 것이며,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구속주 되심을 상기 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사 66:23; 겔 20:12, 20). 인간의 충성을 얻기 위하여 취해진 그리스도의 오심이 허지로 돌아갈 것인가? 오늘날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전 세계적 운동이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안식일을 지킬 뿐 아니라 범사에 즐겨 예수를 따르려는 운동이다. 예수께 의지하며 헌신하고자 하는 이러한 운동이 그대가 서 있는 지점에서 깨뜨려지지 말아야만 한다.

(7)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발견한 것과 동일한 발견을 어떻게 나도 할 수 있는가?
그대가 이러한 발견을 하게 될 때, 그대는 인생에 대하여 새로운 전망을 갖게 될 것이다. 여러가지가 변경될 것이며, 진정한 변화가 오게 될 것이다.
마태복음 24장에는 재림의 징조에 관한 예수의 위대한 설교가 실려 있다. 전쟁, 질병, 지진, 거짓 선지자들, 거짓 그리스도들, 해와 달과 별의 징조, 복음이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파되는 것들이다. 이러한 징조들에 부가하여 한 가지 징조가 있으니 곧 그리스도 재림 직전의 때는 노아의 때와 같게 되는 것이다(마 24:37-39). 노아는 믿음으로 움직였으며 신령한 두려움을 갖고 방주를 준비하였다. 노아가 그와 같이 행하는데는 진실된 신앙이 필요하였다. 그가 만일 신령한 두려움으로 동기가 유발되지 않았더라면 결코 메마른 언덕위에 방주를 짓지 않았을 것이며, 결코 지면에 비라고는 내려본 적이 없는 그러한 시대에 그 방주가 뜨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 되었느니라”(히 11:7).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종류의 믿음과 신령한 두려움이다.
봉사 초기에 예수는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였다. 아마 그 잔치는 수일간 계속되었을 것이다. 제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그곳에 있었다. 포도주가 다 떨어졌을 때 마리아는 예수께 곤경을 알렸다. 그곳에는 포도주는 전혀 없고 물만 가득한 물 항아리가 있었다. 그 때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위대한 발견을 했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요 2:5) 그녀는 영원한 원칙을 발견하였는데 우리는 그 원칙에 의하여 하나님편에 설 수 있으며 하늘에 들어가기를 소망할 수 있다. 마리아는 진정한 제자의 도와 성경적 그리스도교의 기초를 선언하였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그리스도께 대한 충성은 부분적이어서는 안된다. 마리아는 그리스도가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행하는 것이 중요함을 발견하였다. 그대는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싶은가? 그것은 간단하다. 예수와 사랑에 빠지라. 그리고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 결 론
안식일 준수가 일요일 준수로 옮아간 일은 A.D. 150년경 이전으로부터 거의 3세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루어 졌다. 자신들이 유대인이 아님을 분명히 하려는 시도가 어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있었으며, 그 이후로 그들은 일요일을 높이고 안식일을 포기하였다. 그 당시에 가장 유명한 교회사가인 유세비우스는 그의 시편 92편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안식일에 행하여야만 할 의무가 그 무엇이든지간에 그 모든 것은 주의 날에 속하는 것이 더 적절하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주의 날로 옮겼다. 왜냐하면 주의 날은 우월성을 갖고 있으며, 제 1등급에 속하고, 유대인의 안식일 보다는 더 명예롭기 때문이다.” 일요일을 좋게 여기는 교회의 최초 의결은 4세기에 열린 라오디게아 회의에서 있었다. 그러나 일요일 준수와 관계있는 그 법은 안식일 준수를 거부하는 이유로서 유대화시키는 것(유대인처럼 되는 것)을 열거하였다.
왜 일요일 신성성이 발전하였는가? 첫째, 그것은 유대인과 달라지려는 노력이었으며, 그 렇게 함으로 핍박을 피하고자 했다. 둘째, 로마가 세력이 확장됨에 따라 안식일 보다는 일요일 편을 들게 되었다. 셋째, 로마가 끼친 영향력의 결과로 일요일은 다른 수많은 비성서적 관습들과 함께 교회법상의 문제로 변해 버렸다. 안식일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나는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답변을 제시하도록 허용하라.(행 5:29; 수 24:15; 왕상 18:21; 사 56: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