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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 10. 안식일의 회복

 

하나님은 성서에서 제 칠일이 안식일이라고 가르치신다. 넷째 계명은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이다”라고 말한다.

(1) 하나님의 모든 계명들에 관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은 무슨 태도를 취하는가?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 본절에서 말하고 있는 성도는 성화되어 점과 흠없이 거룩한 자들이다. 왜냐하면 “성도”라는 단어는 다른 곳에서 “거룩한”이라고 번역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룩하다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과 관계있는 어떤 것들을 거부한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진실로 거룩한 자는 그분의 계명을 지킬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2)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오늘날 성경적 안식일을 지키고있지 않는데 우리는 안식일이 회복될 것을 기대할 수 있는가?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사 58:12).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사 58:13, 14).
☞ 고대에 하나님께서 짓밟힌 안식일을 제 위치로 회복시키기 위하여 그의 백성들을 부르신 것처럼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그 회복을 위하여 자기 백성을 부르신다. 또한 짓밟혀 버린 모든 계명들을 회복하는 일을 위하여 자기백성을 부르신다(요한계시록 14:6, 7, 12, 14을 읽으라).

(3) 누구에 의하여, 또한 어떻게 안식일은 회복될 것인가?
안식일은 지키는 자들에 의하여 회복된다. 그들은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일컬어질 것이다.
☞ 고대에 적군은 성벽으로 둘러 싸인 성읍을 공격할 때 그 벽에 돌파구(”무너진 데”)를 만들었다. 그러면 그 지점 주변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4) 고대에 하나님은 그의 율법을 파괴한 일에 대하여 누구를 책망하셨는가?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분변치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으로 분변하게 하지아니하였으며 그 눈을 가리워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 하였으므로 내가 그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겔 22:26).
☞ 불성실하며,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며, 안식일로부터 눈을 가리는 것 외에도 제사장들은 더 심한 일들을 하였다. 에스겔 22:28을 읽으라. 그들은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였음으로 하나님께 책망을 들었다. 이것은 안식일과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고려 중인 일들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불행스럽게도 오늘날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처럼 그들의 눈을 하나님의 진정한 안식일로부터 가리는 그리스도교 목사들이 있다. 이처럼 그릇되게 지도자직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변경되지 않았다. 마태복음 15:8, 9을 읽으라.

(5) 하나님은 무엇을 할 사람을 찾으셨는가?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 고로”(겔 22:30).
☞ “무너진 데”라는 말은 이사야 58:12에 사용된 단어와 똑같다. 이사야는 신실한 자들을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로 언급한다. 에스겔은 무너진 데를 막아 서 있는 누군가를 찾아 보았으나 허사였다.

(6) 고대에 유다 종교의 무너진 곳을 수보하여야 할 그때에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이렇게 칠 것은 그들이 내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이라 혹이 담을 쌓을 때에 그들이 회칠을 하는도다”(겔 13:10).
☞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신들의 죄에 대하여 회개하며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도록 하는 대신에, 거짓 선지자들은 민족의 도덕적 방어 벽에 뚫린 무너진 곳 또는 돌파구를 수보하지 못하였다. 도리어 그들은 이스라엘의 문제에 대하여 다른 해결책들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허술한 담을 쌓는 것과 같았으며, 에스겔이 말한 바에 의하면 선지자들은 좋게 보이도록 담에 회칠하는 짓을 하고 있었다. 오늘날도 유사한 상황이 존재하고 있다. 백성들에게 회개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을 호소하는 대신에 거짓 교훈들이 제시 되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것을 긍정함으로써 그러한 교훈들에 회칠하고 있다. 아무리 회칠한다 할지라도 인간이 만든 전통과 가르침은 하나님의 율법의 어느 부분도 대신하여 굳게 설 수 없다. 하나님은 그의 안식일에 대하여 질투하신다. 하나님의 진리들을 대체하려던 고대의 신도들이 당했던 일이 오늘날의 모든 신도들 위에도 닥쳐올 것이다. 에스겔 12:11-16을 읽으라.

◎ 결 론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일이 가능한지에 대해 의아스럽게 생각한다. 요한계시록 14:12을 다시한번 읽어 보자. 요한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갖고 있는 네 가지 상징을 언급한다. 첫째, 그들은 인내가 있다. 곧 그들은 굳건하게 견디는 것이다. 둘째, 그들은 거룩하고 성화된 자들인데 이것은 성도라는 말의 의미이다. 셋째, 그들은 십계명 모두를 지킨다. 넷째, 그들은 예수의 믿음을 가졌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갖고 있는가?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고 예수가 말씀하신 것을 보아서도 분명히 그렇치 않다(눅 6:46). 신앙과 순종은 결코 분리 되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