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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질 - 10. 부자와 나사로

 

내세적인 불멸에 관한 교리를 지지하기 위하여 널리 사용되는 또 다른 성서 구절은 부자와 나사로에 관한 이야기이다(누가복음 16:19-31을 읽으라).
본 성서 구절에 대하여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두 사람에 관한 실제적인 역사로 본다. 다른 사람들은 비유로서 사용된 가공적인 이야기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두 가지 교리를 입증하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다. 첫째, 인간은 사망과 부활 사이에 의식이 있다. 둘째, 인간은 죽자마자 그들의 보상을 받든지 형벌을 받는다.

(1) 아브라함의 품에 천사에 의해 옮겨진 자는 누구인가?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눅 16:22).
☞ 만일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을 설명한 것이라면 우리는 죽은 거지는 자기 누더기와 상처를 가진 육신으로 아브라함 품에 안기게 되었다고 믿을 수 밖에 없다.

(2) 부자는 무슨 일을 당하게 되었는가?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눅 16:22-24).

(3) 죽어 무덤에 장사된 다음에 부자는 살아났는가?
아브라함 품의 나사로는 물질적인 참 나사로가 아니라 그의 영혼이었다고 대답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 이야기는 부자나 나사로의 영혼에 관해 조금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그와 같이 덧붙일 수 있는 권리를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 두 사람 모두 자기가 받은 보상의 자리에 육체적으로 존재해 있는 것이다(“그 손가락”, “내 혀”).

(4) 이 비유가 명백하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미래의 형벌에 관하여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또한 사망과 부활 사이의 인간 형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가 말씀하고 계시는 것은 눅 15:2에 의하여 도입되고 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 예수는 이러한 비난을 부인하지 않으셨다.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예수는 몇 가지 비유들을 도입하셨다.
① 누가복음 15:3-7은 잃은 양의 비유이다. 바리새인들이 잃은 양을 우리에 넣기 위하여 노력하며 그것을 찾은 때에 기뻐함 같이, 예수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셨다(7절).
② 누가복음 15:8-10절은 은전에 관한 비유를 기록하고 있다. 바리새인들은 여인이 잃은 은전을 찾아야만 하며, 그것을 발견하면 기뻐할 수 밖에 없다는데 대하여 동의할 것이었다. 다시 예수는 하늘에서 회개하는 한 죄인을 두고 크게 기뻐할 것이라 말씀하셨다.
③ 누가복음 15:11-32은 탕자의 비유이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바리새인들을 대항하여 그의 요점을 분명히 하셨다. 그들은 양과 은전을 되찾기 위하여 노력을 기울였으며 찾았을 때 기뻐하였다. 그러나 잃어버린 인간이 구원받기 위하여 그리스도께 왔을 때는 맏형처럼 분을 내었다.
④ 누가복음 16:1-13은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의 사업에 감동받기를 거절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대적하였으며 인간을 구원하는 그의 사업에 대하여 전혀 동감하지 않았다. 14절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비웃었다고 말한다.
☞ 누가복음 16:15-18에서 그리스도는 그의 율법의 지속성에 대하여 언급하셨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어긴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죄의 치료제 되시는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있었다. 율법은 구원할 수 없다. 그리스도는 하실 수 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준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⑤ 그러므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그리스도를 거절하므로 유대인들에게 미칠 결과들이 생생하게 예시되었다.

(5) 이 비유에 사용된 “음부(지옥)”라는 말은 악인들의 형벌의 장소인 지옥불인가?
아니다. 헬라어는 하데스로서 무덤을 의미한다.

(6) 그러면 그리스도는 부자를 음부(하데스 또는 무덤)에 살아있게 하셨는가?
이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서는 세가지 이유를 고려해야 한다.
① 그리스도는 백성들이 서있는 입장에서 그들을 만나셨다.
② 사망과 부활 사이에 의식이 존재한다는 교리를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었다. 예수는 당시 유대인들의 흔한 믿음으로부터 이야기 착상을 얻었다-이것은 성경에 배치되는 것이긴 하였으나 유대인들은 흔히 그렇게 믿었다(유대인들 역사가인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기록한 “하데스에 관하여 헬라인들에게 준 강연”에 이 사실이 잘 입증되어 있다).
③ 그리스도는 이미 갖고 있는 견해들을 통해 백성들이 중요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그의 비유를 꼴지었다.

(7) 이 비유가 가르치는 몇 가지 교훈들을 열거하면 어떤 것들인가?
① 인간이 자기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이생에서이다.
② 죽은 후에는 결코 은혜의 기간이 없다.
③ 인간은 자신의 선택에 의하며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구렁텅이를 만든다.
④ 비유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부자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 사이에서 대조를 이끌어 내고 있다.

(8) 부자는 누구에게 도움을 간청 하였는가?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눅 16:24).
☞ 그는 자기 형제들을 위하여 덧붙여서 도움을 청한다.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눅 16:27, 28). 이러한 요청은 하나님이 자기를 전혀 경고하지 않으신 것처럼 하나님께 비난을 퍼붓는 것이다.

(9) 무엇이 더욱 중요한가? 기적인가, 또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가?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시니라”(눅 16:29-31).
☞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기적들보다도 더욱 중요하다. 이 사실은 죽은지 나흘 만에 나사로를 살려내신 예수의 최후 기적에 의해 입증되었다. 그들은 아직도 그리스도를 거절하였으며 심지어 나사로까지도 죽이고자 했다(요 12:9-11).

(10) 부자와 아브라함 사이에 있던 구렁텅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불순종의 구렁텅이였다. 아브라함은 믿었으며 믿음과 순종 중에 하나님을 섬겼다. 유대인들은 그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받아들였던 메시야를 거절하고 있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6).

◎ 결 론
예수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담벽을 헐어 버리고자 오셨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균등하게 구원의 기회를 주고자 오셨다. 이 비유는 미래의 형벌이나 사망과 부활 사이 인간의 형편에 관하여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영혼 불멸의 교리는 여기에서 전혀 지지받고 있지 못하다.
죽은 후 저 세상에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유일의 길은 부활에 의해서이다.바울은 “만일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살아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고전 15:16, 18 공동번역).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를 위해 지금 준비해야한다.